Project Description
2010년 6월 I 인터뷰 I 글_이금희 홍보팀장
Prologue
2002년 5월 초, 이용진 부사장은 서울 명동에서 사채업자를 만나고 있었다. 프라임에셋의 전신인 프라임인스넷 법인 설립 자금 5천만 원을 빌리기 위해서.
당시에 법인 설립을 위해서는 5천만 원의 주금을 납입해야 했다. 그리고 명동 사채업자들은 프라임인스넷처럼 실질 자본금 없이 법인을 설립하는 사람들을 통해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사채업자가 직접 은행에 가서 통장에 주금을 납입하고 은행에서 주금납입 확인서가 발급되면 즉시 돈을 회수하고 수수료를 때는 방식이다.
프라임에셋은 이렇게 무일푼으로 서울 성수동의 작은 오피스텔에서 책상 두 개를 놓고 시작했다. 당시 이윤 사장은 보험사 직원이어서 동생인 이용진 부사장의 이름으로 설립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프라임에셋의 진짜 시작은 프라임인스넷이 아니다.
Episode 1
때는 2001년 10월, 프라임인스넷 설립 7개월 전이다. 이윤 사장이 메리츠화재 영업소장일 때 그는 본인이 관리하던 어느 대리점 사장에게 요청해서 사무실 책상 하나를 빌렸다. 그 책상에는 최근 메리츠화재 영업소 총무를 그만두고 개인대리점을 설립한 직원이 앉아 있었다.
이윤 사장이 근무했던 영업소 중 구리영업소가 있다. 당시 소장과 총무의 인연으로 만났던 정지연 실장.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정지연 총무는 이윤 소장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완벽한 직원이었다. 언젠가 보험사를 떠나 자기만의 대리점 사업을 구상하던 이윤 소장. 구리영업소를 떠나 다른 곳으로 발령 받게 되자 정지연 총무에게 제안을 한다. 본인이 구상한 대리점에 조인하라고.
1등 회사는 아니었어도 메리츠화재는 멀쩡하게, 그리고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던 대기업이다. 하지만 직원으로서 영업소 총무의 한계도 있었다. 적당히 월급 받고 애 키우며 다니다 회사에서 나가라고 하면 명예퇴직 해서 전업주부로 나이 들어가고….
IMF를 경험하면서 우리나라에는 평생 직장 개념이 없어졌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정지연 총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더더욱 평생 직장이 필요했다.
이윤 소장의 제안을 고민하면서 이윤 소장을 되짚어본다. 늘 신뢰를 지키는 사람이다. 신뢰를 지키는 사람이니까 끝까지 책임을 질 것이다. 약속을 지킬 것이다. 좋다! 함께 가자! 더이상 망설이지 않고 정지연 총무는 메리츠화재에 사표를 던진다. 그리고 이윤 사장이 가고자 했던 길에 동행한 최초의 직원이 된다. 그녀 나이 겨우 28세 때 일이다.
정지연 실장이 ‘동선’이라는 이름의 개인대리점을 열고 타 대리점 사무실 책상 한 켠에서 시작한 이윤 사장과의 여정. 아직 변변한 자기 사무실도 없이 그렇게 시작한 것에 대하여 불안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남의 사무실이니까 이런저런 눈치와 불편함이 조금 있었지요.”
불안함보다는 불편함만 조금 느꼈다는 정지연 실장. 멀쩡한 대기업 직원 ‘꼬드겨서’ 남의 사무실 책상 한 개 빌려 앉혀놓고도 여전히 믿고 따라오라 말하는 이윤 사장. 사장의 배짱이 두둑한 건지, 사장에 대한 실장의 믿음이 두둑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윤 사장은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복 중에서도 가장 큰 인복이.
남의 사무실에서 눈칫밥 먹으며 시작한 개인대리점 ‘동선’은 전속대리점이다. 아무래도 영업 확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법인대리점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리고 꼭 필요한 한 가지. 더 이상 눈치 안보는 자기 사무실. 2002년 5월 이렇게 해서 프라임인스넷이 설립되었다. 남의 사무실 눈칫밥 먹은 지 꼭 7개월 만이다.
프라임에셋 첫 직원인 정지연 실장. 지금은 임원의 지위에 있는 그녀가 1호 직원이면서 지금까지도 늘 변치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회사를 설립한 첫 해는 정말 급여 받기가 죄송할 정도였어요.”
직원은 단 한 명.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해야 했다. 회사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정지연 실장. 회사의 실적부진으로 부채는 늘어나고 회사가 문을 닫느냐 마느냐 하는 불안한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스카우트 당시 약속했던 복지, 급여 등 그녀에 대한 이윤 사장의 약속은 아직까지 어느 하나 지켜진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윤 사장이 본인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은 신용카드로 대출까지 받아서 제 월급을 챙겨 주셨어요. 다른 사장이라면 회사에 돈이 없다며 그냥 미루었을 텐데…”
한번은 회사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그 달 급여는 포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통장에 급여가 입금된 거예요.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서 사장님의 급한 부채부터 정리하시라고 말씀드린 적도 있어요. 저는 남편이랑 맞벌이를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회사 경영이 이 정도로 불안정 할 때 보통의 직원들은 다른 회사에 이력서부터 넣는다. 그리고 본인 급여가 입금되는 날이 회사에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다. 그런데 여기 이 사람. 자기 급여를 다시 사장에게 돌려주려고 했다.
“회사는 당시 정말로 돈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사장님은 그냥 웃으시더군요. 참 믿음직스럽고 대단해 보였죠. 그래서 기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사장이 대단한 게 아니다. 그런 사장을 믿고 따른 직원이 대단한 게다. 그런 불안정한 회사에 여전히 자기의 미래를 맡기고 사장에 대한 신뢰를 가지다니…
오래 전 기자 주변에 정지연 실장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친구가 있었다. 회사가 불안하다면서, 그런데 사장이 너무 좋은 사람이라면서 자기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사장과 함께 끝까지 간다고… 회사는 결국 폭망했고 친구는 9개월치 급여를 날렸다.
Episode 2
서로 간의 신뢰가 아무리 두터워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 결혼한 여직원 대다수가 경험하는 임신과 출산.
2003년 1월부터 정지연 실장은 둘째 출산을 위해 휴직을 해야만 했다. 빠듯한 살림에 사무실 직원은 늘 혼자였다. 하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정지연 실장을 대신해서 다른 누군가 더 필요하다. 이윤 사장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하지만 더 조바심나는 건 정지연 실장이다. 이렇게 망해가는 대리점에 과연 누가…
답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전 직장 선배이기도 하고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던 메리츠화재 강남플라자에 근무중인 송강임.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그리고 빠르게 잘 처리하던 그 선배라면 충분히 여기를 감당할 수 있었다. 오히려 넘칠 정도다. 문제는 과연 선배가 여기에 올까다. 강임 언니에게서 전화가 온다.
“지연아, 이윤 소장님이 오라고 하시는데 거기 어떠니? 월급은 잘 나오니?”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눈 질끈 감고 대답한다. “어머, 언니! 반가워요. 월급이요? 에이~~ 이윤 사장님 성격 잘 아시면서… 그거야 기본이죠.”
이렇게 프라임에셋 2호 직원인 송강임 실장이 들어왔다. 인수인계를 하고 2003년 1월에 출산휴가를 떠난 정지연 실장. 그녀가 송강임 실장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떠날 때의 마음은 결코 나몰라라 하는 심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은 비록 어려워도 이윤 사장은 분명 성공할 것이고, 본인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프라임에셋은 긴 출산 휴가 뒤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좋은 직장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가 없는 사이 회사의 사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송강임 실장은 어땠을까?
어느 날 송강임 실장이 퇴근을 했다. 집에 가려고 전철역으로 발걸음을 총총 옮기는 도중에 이윤 사장에게서 전화가 온다. 어떤 빌딩에 와서 영업 상담을 하고 나가려고 하는데 주차비가 없단다. 다시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인터넷뱅킹으로 본인 계좌에서 이윤 사장에게 넉넉한 주차비를 송금한다. 정지연 실장의 출산휴가 동안 프라임에셋의 모습이다.
정지연 실장이 출산휴가 들어간 지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이윤 사장은 이미 메리츠화재를 퇴사하고 대리점 사업에만 올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졌다. 주차비를 직원에게 빌려야 할 정도로. 하지만 휴가를 마치고 복귀 하겠다는 정지연 실장에게 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일. 정지연 실장이 복귀하면서 살림은 더욱 빠듯해졌다. 프라임에셋은 뭔가 새로운 승부수가 필요했다. 이윤 사장은 대담하게 일을 벌이기로 한다.
메리츠화재와 삼성화재에 임차지원을 요청했다. 그것도 대형 사무실로. 그들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했지만 어차피 망해가는 회사, 이렇게 망하나 저렇게 망하나 원 없이 판은 벌려보겠다고 생각한 이윤 사장. 큰 사무실을 만들었으니 거기에서 함께 일 할 사람을 찾아야했다. 사업의 방향을 대리점모집과 TM의 두 축으로 잡는다.
TM채널은 메리츠화재 시절부터 선배로서 익히 잘 알고 지내던 허연희 실장(현 영업3본부장)에게 일임하고, 대리점 모집은 본인이 직접 발로 뛰면서 사무실에서 함께 일 할 대리점들을 찾아다녔다. 당시 프라임에셋은 전형적인 연합형 GA였다.
그리고 하나 더, 이윤 사장의 동생인 이용진 부사장이 정식으로 회사에 합류한다. 어차피 프라임인스넷은 이용진 부사장의 이름으로 설립됐었으니까…
Episode 3
정지연 실장이 휴가에서 복귀하고 3달 뒤인 2003년 9월, 이윤 사장, 이용진 부사장, 정지연 실장, 송강임 실장의 스태프 진용을 갖춘 프라임에셋은 성수동 오피스텔을 떠나서 광장동에서 새로운 비상을 준비했다. 대리점 치고는 꽤 큰 규모의 사무실, 큰 책상과 쇼파까지 놓을 수 있었던 대표실, 회의실, TM 전용 사무실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딱 하나, 실적 빼고.
수수료가 자주 밀렸다고 한다. 당시 이윤 사장과 이용진 부사장은 가족의 상당한 부채를 떠 안고 있었다. 게다가 이윤 사장의 수수료 예측이 빗나가는 바람에 보험사에서 받는 것보다 더 많은 수수료가 서브 대리점에 지급되는 구조였다고. 실적을 하면 할 수록 빚만 늘어나는 구조였다. 당시에 이미 두 실장의 월급은 상당 기간 밀려있었다.
“광장동으로 이사하고 2004년 1월은 가장 힘들었어요. 회사에는 빚쟁이가 와서 하루 종일 사장님을 괴롭혔고, 사무실에 걸려오는 전화는 업무 요청보다는 밀린 수수료 언제 줄거냐는 독촉 전화가 대부분이었지요.”
결국 설을 앞둔 어느 날 저녁, 이윤 사장은 회사를 접기로 결심하고 동생에게 폐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용진 부사장은 더 버티자고, 아직 우리는 더 내려갈 용기가 있으니 더 버티자고 얘기했다고. 결국 망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두 형제는 의기투합 했다.
“수수료 지급일과 설 명절이 공교롭게 겹쳐 있었어요. 수수료는 명절 연휴 전에 이미 지급되었지만 회사 잔고는 비어 있었지요. 밀린 수수료 지급하고 나니까 당월 수수료를 지급할 여지가 없었어요.”
수수료를 달라고 하는 서브 대리점이나 설계사들에게는 명절이 끼어서 명절 이후에나 나온다고 뭉뚱그렸다. 문제는 명절 이후에 어떻게 버틸거냐였다. 회사를 닫는 게 정상이었다.
“그 달에 송강임 실장은 한 달간 무급휴가를 들어갔어요. 어차피 일도 없고 걸려오는 전화라고는 수수료 독촉 전화뿐인데 그런 전화를 굳이 두 사람씩이나 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수많은 독촉 전화를 받아내는 정지연 실장을 옆에서 보며 문득 저 밝고 환한 얼굴 어디에서 저런 뻔뻔함이 나올까 생각했어요.” 이용진 부사장의 말이다.
“네? 수수료요? 어머 저희 오전에 다 나갔는데 아직 못 받으셨다고요? 확인해 볼께요. 아마 누락되었나봐요.”
“어머, 저희는 수수료가 설 이후에 나온대요.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명절 끝나고 보험사 입금되는 대로 바로 보내드릴께요.”
잔고 0원인 통장 내역을 화면으로 확인하면서 정지연 실장이 수수료 독촉 전화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형의 ‘꼬드김’에 빠져 세번째로 회사에 합류한 이용진 부사장. 결국 연휴 기간 동안 죽자사자 돈을 만들었다. 오천만 원을.
“당시 오천만 원은 회사의 한 달치 수수료였어요. 설 이후에도 회사가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도 있었지만 사장님이나 부사장님 반드시 해 낼 거라는 믿음도 있었어요”
Episode 4
창사 이래 최고의 위기를 기적처럼 이겨낸 프라임에셋. 이후에도 회사의 위기는 몇 번 더 있었겠지만 폐업을 논의하는 시점에서 부활의 반전을 이뤄낸 것처럼 드라마틱한 게 또 있을까! 이렇게 서로를 신뢰하고 배려하면서 회사는 생과 사의 고비를 넘기고 2004년 봄부터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게 된다.
“큰 위기를 이겨냈더니 대리점들이 우리 회사를 신뢰하기 시작했어요. 이윤 사장이 결국 위기를 이겨내고 신뢰를 지켰구나. 주변 업계에는 이런 인식이 확산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무실에서 함께 일을 하였고, 더 많은 서브대리점들이 업무협약을 맺었지요.”
2004년부터 시작한 회사의 성장 곡선은 년 200%를 넘어설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성장이다. 단지 매출만 성장한 게 아니다.
2006년부터는 밸류체인에 의한 질적 성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대형 대리점들이 매출 성장을 지키지 못하고 서로 분할되는 이유는 공동체 문화가 없어서이다. 연합GA의 한계다. 밸류체인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비전을 담고 있었고 이를 통해 프라임에셋은 연합GA 문화가 아닌 공동체 문화가 뿌리내리게 되었다. 지금 프라임에셋 수많은 구성원이 공유하는 비전이 생성된 것이다.
매년 기록적인 성장을 경신하면서 2009년이 되었다. 갑작스럽게 어마어마한 규모로 성장한 회사. 업계에도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서 결국 금감원의 감사 대상이 된다.
“3월과 5월 두 번을 받았어요. 3월에 처음 받았을 때 많이 긴장했지만 성실하게 대응했고 감사반도 큰 지적은 없었어요. 우리는 잘 끝났다고 생각했었지요.”
그것은 예비감사에 불과했다. 예비감사를 통해 프라임에셋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5월의 어느 월요일 아침, 금감원의 두번째 방문이 이어졌다. 예고 없이 갑자기.
“지난번 그 분들이 또 나오셨길래 무슨 일일까 궁금했었죠. 지난번은 예비감사였고 이번은 본감사라고… 예비감사에서 파악한 우리 회사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파고 들더라고요.”
약 2주간에 걸친 본감사는 모두를 경악시켰다. 지난 몇 년치의 모든 자료를 열람하면서 그들은 회사 경영진을 거의 빈사상태로 끌고 갔다. 주식회사에 대한 충분한 지식 없이 시작한 대리점 사업. 처음에는 그냥 먹고 살기 위하여 시작했지만 시장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큰 회사가 되었다. 문제는 회사 내부의 자료가 그에 걸맞게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
“감사팀 사람들이 경영진에 대해서 검찰 고소도 진행할 수 있다고 겁을 잔뜩 주니까… 사장님은 본인이 빠지면 회사의 앞날이 어찌 될 지 모르니 부사장이 십자가를 지라고… 부사장님은 곧 아기가 태어나는데 무슨 소리냐, 내가 회사를 잘 이끌 테니 형이 감당하라고… 서로가 이런 이야기를 장난스럽게 주고 받으시더라고요. 장난이었지만 당시에는 이런 대화를 나눌 정도로 회사는 모든 것을 각오해야만 했습니다.”
금감원은 회사의 모든 사안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적 사항 대로 징계가 나온다면 회사는 문을 닫아야 했다.
“그들은 많은 것을 지적했지만 또한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장님과 부사장님이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 하는지에 대해서도 인정했고요.”
창사 이래 처음으로 금감원의 본감사를 받게 되면서 전 직원들은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업무를 해야 했다. 금감원에 제출 할 자료를 만드느라 거의 모든 직원들이 밤 12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다고 한다. 어쨌든 지옥의 2주가 끝났다. 금감원은 핵심적인 것 몇 가지와 회사가 향후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을 지적하고 돌아갔다. 회사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넘겼다.
Episode 5
문제는 이제부터다. 금감원의 지적사항이 이럴진대 향후 국세청 감사는 어찌 감당할꼬. 회사는 몇 번에 걸쳐서 회계 컨설팅을 받았지만 보험대리점의 재무현황은 일반적인 회계 기준으로는 도저히 정리할 수 없는 항목이 너무 많았다. 대리점 업계에서는 많은 것이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었고 프라임에셋도 관행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 하지만 관행을 따르기에는 회사가 너무 컸다. 관행이 회사를 지켜주지는 않는다.
지속가능한 기업이 되려면 제대로 해야만 했다. 새로운 법인을 설립해서 정말 알차고 깨끗하게 새로 시작하는 것이 답이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프라임인스넷에서 프라임에셋으로의 담대한 진화를.
당시 등록된 설계사만 1,800명. 이들 모두의 설계사코드를 프라임인스넷에서 프라임에셋으로 전환해야만 했다. 설계사 한 명이 등록된 보험사만 평균 13곳. 13개 보험사에 등록된 25,000여 코드를 프라임인스넷에서 말소하고 프라임에셋으로 등록해야만 했다. 그것도 2주 이내에.
“많은 직원들이 엉엉 울면서 밤을 꼬박 새워가며 일에 매달렸어요. 집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회사 근처 모텔을 잡고 잠시 쪽잠을 자고는 새벽부터 일을 하는 직원들도 많았어요.”
업무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았다. 도저히 기존 직원들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직원을 충원해도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놀란 신입직원들은 대부분 탈락했어요. 모든 직원들이 서로를 위로해 가며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텼지요. 저도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을 일하고 밤 늦게 집에 들어가면 육아는 완전히 남편 몫이 되어 있었지요. 미안한 적도 많았지만 별 수 있나요. 회사가 먼저 살아야죠.”
2주간의 목표였지만 시행착오가 속출했다. 문제는 보험사에서 주로 나왔다. 1,800여 명의 코드는 보험사의 두세 직원에 의해서 2주만에 이루어 질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결국 이를 보완하고자 회사가 직원들을 보험사에 지원 보냈을 정도라고… 법인전환을 하면서 코드 등록 업무가 거의 끝난 시점은 한 달이 훌쩍 넘어서였다. 코드가 없는 동안 영업을 못한 많은 설계사들이 회사를 원망했고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이 다시 한 번 프라임에셋에 미소를 짓는다.
“갑자기 실손보험에 대한 보장 축소가 발표되었어요. 보험 용어로는 절판이라고 하는데… 보장이 축소되기 이전에 상품에 가입하려는 계약자들로 인해 어마어마한 실적이 몰려들었지요.”
회사에 대한 불만이 폭발 직전이었던 설계사들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계약 때문에 회사를 욕할 시간도 없었다고. 그렇게 두세 달 동안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긁어 모으면서 법인전환은 마무리 되었다.
물론 그 때도 직원들의 고생은 지속되었다. 사상 최대의 업무량을 처리하기 위해서.
“당시에 직원들은 아예 여섯 시 출근, 열두 시 퇴근을 회사의 규칙으로 생각하면서 일을 했었어요. 3월의 금감원 예비감사부터 시작해서 5월의 본감사, 6월의 법인전환, 7월부터 이어진 사상 최대의 실적… 이 모든 게 마무리되고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출퇴근 할 수 있게 된 시점은 그 해 10월 정도였지요. 정말 고마운 것은 그렇게 힘들 때 아무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는 거예요. 당시에 직원들은 회사를 많이 원망했겠지만 그러면서도 자기 일을 회피하지는 않았어요. 정작 직원들이 그만 두기 시작한 시점은 일이 다 끝나고 좀 편해진 10월부터였지요. 그래서 너무 미안해요. 고생만 잔뜩 시켜 놓고…”
힘들 때 결코 회피하지 않고 자기 책임을 반드시 완수하는 직원들의 문화. 첫 직원인 정지연 실장으로부터 이어진 프라임에셋의 전통이고 문화인가보다.
Epilogue
회사는 결국 2009년, 장기 초회보험료 60억 원, 자보 납입보험료 600억 원이라는 믿을 수 없는 대 기록을 만들었다. 기록을 만드는 동안 영업가족과 스태프의 인원도 배 이상 늘어났다. 남의 대리점에 책상 하나 얻어서 시작한 프라임에셋이 8년 만에 3,000여 명의 FC가 근무하는 GA가 되어 업계 1위의 자리를 지키다니, 참으로 대단한 성과다.
프라임에셋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GA 사상 가장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성장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약속을 가장 중요시하고 늘 신뢰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윤 사장, 밸류체인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GA 업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공동체 문화를 창안한 이용진 부사장, 회사의 모든 재무 현황과 수익 극대화를 놓치지 않는 야무진 살림꾼 송강임 실장, 그리고 회사의 첫 직원으로서 사람에 대한 신뢰의 끝판을 보여준 정지연 실장.
정지연 실장을 비롯한 이 회사의 스태프들은 현재의 성장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들은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함께 어떻게 하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까에 대하여 늘 고민한다. 고민에 대한 해법은 다시 사람에 있다. 프라임에셋은 사람에 대한 가치를 추구하는 회사니까.
“만일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하고 메리츠화재에 계속 근무했었다면 지금쯤 거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지 상상이 잘 안 되네요. 입사 동기들 대부분은 지금 거기에 없으니까요.”
평생 직장을 추구하며 이윤 사장을 따라 나선 정지연 실장의 모험, 그리고 프라임에셋과의 동행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프라임에셋은 그녀만의 평생 직장이 아니라 수많은 후배들의 평생 직장이어야 하니까.
2020년 현재
<프라임에셋>의 최고운영관리책임자로서 전 직원의 모든 지원업무를 이끌어 가는 운영지원실장으로 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