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2010년 10월 I 인터뷰 I 글 · 사진 _ <프라임에셋>홍보팀
추석연휴를 코 앞에 둔 서울의 금요일 오후는 유난히 교통체증이 심했다. 경기도 평택에서 서울 도심의 한 복판인 광화문까지 막힌 길을 뚫고 시간을 정확히 지켜서 인터뷰 장소에 모습을 드러낸 김정현 본부장. 자신의 자산 1호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믿음’이며 ‘나’보다는 ’우리’를 선택하며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그래서 더욱 당차보이는 그녀에게서 그녀만의 삶과 꿈, 그리고 영업29본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일에 대한 사랑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열정
김정현 본부장, 그녀에게는 원래부터 자존심과 오기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자신이 가고 싶었던 대학에 불합격하자 그녀는 대학입시 중심의 한국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대학을 나와야만 사람대접을 받는다는 주변의 편견에 반기를 들고 아예 취업을 해버렸다. 재수를 해서라도 무조건 대학은 가야 한다는 주변의 잔소리가 오히려 그녀의 오기를 자극한 것이었다.
“나 스스로의 가치가 더 중요하지, 그깟 대학 좀 안 나오면 어때서!”
그녀의 첫 직장은 평택에 있는 기아자동차의 서비스센터였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단순 사무직이었지만 잘난 능력 탓이었을까?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정직원이 되어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와 더불어 초롱초롱 빛나는 그녀의 눈동자. 지금도 상당한 동안인 그녀의 얼굴로 미루어 짐작컨대, 20여 년 전 사회 초년생이었던 그녀는 분명 회사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일 잘하고 귀여운 막내 사원이었을 게다. 야무지고 당차게 업무를 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한 고객이 차량을 입고하면서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런데 정비에 대해서 잘 몰랐던 그녀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하자, 그 고객은 서비스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런 것도 모르느냐며 심하게 화를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화를 내는 강도가 상당히 심했던 것 같다.
“그날로 당장 정비 책을 구입했지요. 사무실에서 열심히 보고 또 보고, 모르면 서비스 기사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그렇게 한 6개월 정도 공부를 하고 나니 어느 정도 고객이 접수하는 내용에 대하여 바로 조언을 해줄 정도가 되었답니다.”
서비스센터에서 그녀는 고객이 차를 입고시킨 후 가장 먼저 만나는 직원이었다. 접수 데스크에서 고객이 궁금해하는 고장 원인과 대략적인 수리방식, 그리고 수리기간까지 안내하는 그녀를 상상해보라.
“차량의 쏠림 현상이 있으시다고요? 휠 얼라이언먼트를 점검해야겠네요. 핸들 떨림도 있으시다고요? 그럼 휠 밸런스도 함께 봐드리겠습니다. 총 수리기간은 아마도 이틀 정도는 걸릴 것 같네요.”
아직 소녀 티가 물씬 풍기는 여직원의 전문적인 응대는 고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급기야 4명의 여직원이 하던 일을 혼자서 감당하는 등, 회사의 만능 직원이 되어갔다. 급여가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사장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더 성실하게 일을 해냈다. 6년 정도 근무를 했을 때,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국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사장은 퇴사하는 그녀에게 감사의 표시로 서비스센터 내의 자판기 운영권을 주었다. 1997년도의 일이다.
회사를 퇴사한 그녀는 결혼을 하였고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한 남자의 아내와 한 아이의 엄마 역할에만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대한생명의 수석팀장을 알게 되었고, 결국 그의 소개로 6개월 정도 대한생명에서 생보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으로 보험영업에 뛰어들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시댁이 평택 지역사회에서는 꽤 알려진 집안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보험영업을 하는 것을 매우 못마땅해 하였다. 결국 그녀는 제대로 영업 한 번 못해보고 보험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포기한 것은 ‘보험영업’이지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일을 찾고자 했던 그녀는 결국 보험영업을 대신하여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낸다. 그것은 바로 카드영업이었다. 마침 평택에는 뉴코아 백화점이 오픈하여 삼성카드가 백화점과 제휴하여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던 때였다. 보험영업을 극력 반대했던 남편도 삼성카드에 입사한다는 그녀를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그녀의 두 번째 사회생활이 시작된다.
그녀가 시작한 카드영업은 예상 외의 실적을 올렸다. 비록 영업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풋내기 영업사원이었지만 신용카드의 가입 신청을 받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기업을 찾아가야 했다. 때마침 평택에 있는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은 그녀가 평소에 잘 알던 사람이었다. 노조위원장 덕분에 그녀는 쌍용자동차 공장 내에 인-하우스 형태의 점포를 오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카드 영업은 날마다 기록을 갱신했다. 장소 특성상 남직원들이 많았기에 그들을 공략하고자 미모의 여대생들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했고, 그녀의 영업전략은 계획대로 맞아떨어졌다. 직원들의 관심을 단박에 집중시켰고, 이후 삼성카드 가입신청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덕분에 월 4~500만원의 수익은 거뜬했다고. 흔히 말하는 미인 마케팅으로 첫 번째 영업의 세계에서 짜릿한 승부를 경험한 김정현 본부장. 남자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목적이 분명했고, 무엇으로 움직일지에 대한 수단을 명확히 했다. 분명한 성과를 이루어내면서, 수익도 괜찮았고 일도 즐거웠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무언가 해낸 듯한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생활을 했던 김정현 본부장. 삼성카드 영업을 한지 1년 즈음 되었을 때다. 어느 날 중요한 가족모임 행사가 있었고, 그녀는 그 행사에서 케이크를 담당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업무가 계속 복잡하게 꼬이고, 수수료 문제로 다툼까지 발생해서 제시간에 귀가 할 수가 없었다. 한 시간 정도 늦었을까. 뒤늦게 도착한 약속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녀를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와 조카가 케이크를 사려고 제과점에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 다행히 큰 인명사고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죄책감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삼성카드 일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두 번째 사회생활을 마감했다.
어려운 사람을 돌볼 줄 아는 신념이 준 행복
이후 1년 정도. 그녀는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의 죄책감을 넘어서기에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어머니와 조카가 완전히 회복하고 2002년이 되어서야 그녀는 다시 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게 되었다.
당시는 부동산경기가 한창 좋을 때였다. 아무래도 부동산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SK생명의 대출담당 영업직원으로 입사를 한다. 어쩌면 보험은 그녀와 필연의 관계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로 보험영업을 할 수 없었지만, 대출담당이라고 입사한 회사도 결국 보험회사였으니 말이다. 보험회사의 대출이었으니 대출조건에 보험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녀가 SK생명에 입사한 가장 큰 이유는 장차 부동산 임대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부동산 대출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였고, 부동산 경매전문가 과정도 수료했다. 실제로 그녀는 대출담당 영업을 하면서 경매를 통하여 주택을 구입하였고, 임대사업도 시작했다. 임대사업을 하고 있었으니 그녀에게는 급여 이외에도 임대수입이 발생하였고 소득은 안정적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SK생명의 대출 고객들에게 늘 너그럽고 고마운 대출 담당자로 일 할 수 있었다. 굳이 전문용어로 ‘꺾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SK생명에서 대출을 받으려는 고객들은 수 천 만원, 수 억원이 필요해서 오시는 분들이 아니랍니다. 당장의 생활비가 없거나 급전이 필요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보험료까지 부담시키는 일은 할 수가 없었지요.”
저소득 빈곤층에게 자신의 소득을 위하여 더 이상의 금전적 부담을 얹힐 수 없었다는 그녀는 진정 서민을 배려할 줄 알고 어려운 사람을 돌볼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한 번은 65세 정도 되신 할머니가 자식 때문에 천 만원 정도를 대출받으러 오셨어요. 대출조건이 맞지 않아 여러 곳에 의뢰했는데 다 거절당하시고 마지막으로 저를 찾아 오셨더라구요.”
김정현 본부장은 그 분의 안타까운 사연을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대출조건과 서류를 본인이 직접 구비하여 대출을 해드렸다. 그러한 인연으로 그 분은 해마다 직접 농사 지은 고구마며 옥수수 등의 햇상품을 들고 김정현 본부장의 사무실을 찾았다고 한다. ‘이거 김정현씨 들어오면 꼭 함께 먹어야 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항상 잊지 않고 손수 뭔가를 들고 오셔서 감사의 표시를 하시는 그분을 볼 때마다 그녀는 매일 새벽마다 그녀를 위해 기도를 드리러 예배당을 찾으시는 친정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한다. 김정현 본부장의 가슴을 항상 뭉클하게 해주었던 그 분은 고객이기 보단 사람의 정성과 따스함을 가르쳐주신 분이었다. 비록 2008년도에 운명을 달리하셨지만 요즘도 그분을 생각하며 가끔 친정어머니와 함께 독거노인들을 찾는다고 말하는 그녀. 어려운 분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보탤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주심에 늘 감사하며 그 분을 기억한다는 그녀의 눈망울에는 어느덧 작은 이슬이 맺혀있다.
사보를 처음 기획하는 단계에서 회사의 경영진은 사보가 회사 내의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되기를 희망했다. 때문에 회사 구성원들의 삶과 꿈을 소중하게 다루고 프라임 가족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이 있었다. 내용을 예쁘게(?) 각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경영진이 원했던 사보의 기획방향은 흔해빠진 영웅전이나 위인전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고통과 좌절, 그리고 희망을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이었다. 현재가 힘들면 힘든 대로,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모든 것을 솔직하게 써 나가는 것. 경영진은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고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프라임에셋> 가족들의 원동력이 되리라 믿었고, 그것을 통하여 사보의 가치가 형성 되기를 원했다.
필자가 인터뷰의 취지와 내용 전개 방향을 말했을 뿐인데 10년 전 일을 어제 일처럼 조근 조근 이야기해 주는 김정현 본부장. 남들이 다 잊어버릴 듯한 세세한 이야기에 스토리와 감정이 담뿍 담겨 나온다. 문득 한 템포 쉴 겸해서 넌지시 물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을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하세요? 하루 이틀 전의 이야기도 아니고 십 년 전 이야기들을 말입니다!”라는 질문에 그녀는,
“저는 일주일에 두, 세 번 정도 일기를 쓴답니다. 그 주에 있었던 일들을 말이죠. 예전에는 깜박거리는 버릇 때문에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습관이 되었네요.”
일기를 쓰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는 그녀. 그녀에게 실수나 상처는 독이 되지 않는다. 더욱 열심히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훈이 될 뿐…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믿음입니다”
SK생명에서 시작된 보험과의 인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보험을 통해 삶의 진리를 배워가는 그녀였기에 주변 사람들의 보험에 대한 선입견도 결국 바꿀 수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대출과 연계된 보험이 아닌, 보험 그 자체만을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경력을 살려 LIG손해보험에 입사하였다. 생명보험이 아닌 손해보험을 다루어야 했던 그곳에서, 그녀는 교재로만 학습하는 손해보험이 아니라 실무를 통하여 보험을 학습하고 싶었다. 그래서 본인을 증원했던 LIG팀장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고 한다.
“저는 손해보험을 실전 경험을 통해 배우고 싶습니다. 만약 자동차 사고가 난다면 밤 11시, 12시라도 좋으니 저를 불러주세요. 직접 현장에서 배우겠습니다.”
결국 그녀는 손해보험에 대한 교육을 현장 경험을 통해 완전하게 습득할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사회초년생 당시 배운 정비관련 지식 또한 한 몫 톡톡히 했을 터. 그녀는 보험영업을 하다 보니 좀더 다양한 상품을 고객에게 팔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영업사원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보험상품을 고민해서 고객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게 해서 그녀는 2005년도에 모 GA의 평택 지사로 옮기게 된다. 그런데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그녀가 근무하던 GA의 영업담당자가 본사로 발령이 났다. 그는 ‘김정현 본부장만 믿겠다. 잘 알아서 관리해달라’며 본사로 갔다. 이제 좀 본격적으로 보험 일을 해 보려고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용기는 없고 두려웠지만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한 번 끝까지 가봐야 했다. 결국 4명의 관리자급 영업직원이 서로 역할을 분담해서 지사 운영을 맡기로 하였다. 그런데 지사운영 3개월 만에 자금을 관리하던 영업직원이 수수료를 가지고 도망을 가버렸다. 그 직원은 이미 몇 개월간 지사의 임차료를 비롯한 각종 운영비를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었고, 자기의 비리가 탄로나지 않게 하려고 지사의 여직원 급여만 따로 지급하고 있었던 것. 하루 아침에 밀린 전화 요금과 임차 관리비를 비롯하여 그 달의 수수료까지 약 3천 만원 정도의 손실이 생겼다. 밀린 전화요금 때문에 전화는 불통이 되었고, 사무실은 완전 아수라장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를 믿고 따르는 FC들이 있었고, 고객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도 사람과의 신뢰를 중요시하고 믿음을 소중히 하는 그녀였기에 이를 악물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업비가 지출되는 모든 관리 항목의 명의를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고 더욱 열심히 뛰기로 한다. 손실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매출을 더 늘려야 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
어느덧 시간은 흘렀고 지사는 정상화 되어갔다. 사무실에는 새로운 영업가족이 꾸준히 증가했고 계약도 전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김정현 본부장은 영업지표가 이전보다 월등히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수수료 수입이 이전과 비교해서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 원인을 찾던 차에 한 보험회사 소장이 김정현 본부장을 찾아왔다. 소장은 김정현 본부장에게 요즘 들어 자기네 보험을 안 팔아주는 이유를 물었고 김정현 본부장은,
“아니 소장님 수수료를 똑바로 주셔야지요. 300% 나오던 수수료가 100%도 안 나오는데 어느 FC가 그 상품을 팔겠어요?”라고 반문했단다. 그러자 소장은 ‘수수료는 변동된 것이 없는데 무슨 소리냐’며 황당한 듯 그녀에게 되물었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곧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사의 매출이 늘어도 수수료 수입이 증가하지 않은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단지 본사가 수수료를 속였을 뿐이었다. 자신이 믿고 따랐던 회사에 대한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상황.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가 수수료를 속이다니… 더 암담한 상황은 김정현 본부장이 본사의 ‘지급액’과 상관없이 지점의 영업가족들에게는 본인이 약속했던 ‘지급률’을 준용해 온 것이었고, 이 때문에 개인적인 손실이 훨씬 커진 것이었다. 당장이라도 본사에 올라가서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믿음…. 그래, 지금까지 난 인간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터 온 사람이다.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자. 내가 모르는 무슨 사정이 있어서겠지. 언젠가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될 거야’라며 다시 일에 몰두했단다. 허허.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자 기본에 충실한 <프라임에셋>을 선택했다
그 즈음 이었다. <프라임에셋>의 영업7본부장인 김진필 이사를 만난 것이. 그녀는 김진필 이사를 통하여 본인도 회사의 최고 영업관리자인 본부장으로 승격될 수 있는 ‘밸류체인’ 제도를 알게 되었고, 투명한 ‘수수료체계’, 명쾌한 ‘규정집’ 등 일반적인 GA에서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평택이란 지역사회에서 3년 동안 유지해온 스스로의 자존심과 신뢰를 무너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비록 본사가 김정현 본부장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좀더 열심히 노력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 믿었다. 때문에 <프라임에셋>에 대해서는 그저 좋은 GA정도로만 생각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진필 이사의 방문을 받고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던 차에 함께 근무하던 여직원의 급작스러운 사망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직원이었는데 갑자기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다니…. 정신 없이 장례를 치렀다. 장례를 치르던 중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본인이 일하는 GA에서는 근조환 하나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함께 사망 소식을 접한 김진필 이사는 첫날부터 <프라임에셋> 명의의 근조환을 보내주었는데…. 이윽고 장례식 마지막 날 뒤늦게 도착한 소속 GA 대표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언제부터 <프라임에셋>과 계약을 맺었냐’며 장례식장에서 되려 그녀에게 화를 냈다.
“기가 막혔죠. 그것도 장례식장인데 어이가 없었습니다”
인내에 한계를 느낀 그녀는 다음날 본사를 찾아갔고, 그 동안 수수료 문제부터 이것저것 서운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풀어놨다고 한다. 그리고 지사로 돌아오자마자 그 법인의 간판을 내렸다.
며칠 후, 김정현 본부장은 서울에서 이윤 대표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의 경영철학을 들으며 참 지혜롭고, 가슴으로 세상을 대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제가 <프라임에셋>과 관계를 맺은 지 벌써 2년이 되었네요. 어쨌든 저는 <프라임에셋>에 입사해서 1년 만에 본부장이 되었답니다. 기존 법인의 간판을 내릴 때 영업가족들이 저를 믿고 따라와 주었고, 덕분에 힘든 과정을 잘 헤쳐나올 수 있었습니다.”
김정현 본부장의 영업29본부는 이전 GA에서 일을 할 때보다 매출이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정말 열심히 살아온 김정현 본부장.
“<프라임에셋>은 타 GA처럼 사무실 임차료나 여직원 운영비 등을 따로 지급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을 영업관리자에게 업적에 비례하는 수수료로 주지요. 처음에는 이것이 타 법인과 비교했을 때, 이 회사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모든 것을 수수료의 형태로 받아서 제가 운영을 총괄하다 보니 사업의 개념을 알게 되었지요. 제가 타 법인의 지사장일 때는 제 사업이라기 보다는 월급쟁이 지사장의 개념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한 본부의 운영자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회사가 저에게 지급한 본부장 수수료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저의 최종 수익이 결정되니까 사업의 진정성을 알게 되는 거죠.”
GA의 수익은 전적으로 FC의 영업에 의한 수수료에서 발생한다. GA가 이 수수료를 어떤 항목으로 지급하는가는 GA마다 천차만별이다. <프라임에셋>의 경영진은 수수료의 일부를 이름만 바꾸어서 지사장 월급이나 임차료의 형식으로 주는 것을 ‘사악한 짓’이라고 여긴다. 본사가 영업현장의 고정경비를 책임진다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현장의 영업관리자들에게 안정적으로 사업장을 운영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는 FC들에 대한 착취구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업장의 효율과 상관없이 지사 수수료의 상당부분이 운영자에게 고정경비로 지급되는 순간, FC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는 그 나머지 금액을 적당히 포장하는 수 밖에 없다. 포장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가령 ‘정착수당’, ‘도입수당’, ‘자녀 학자금 지원’ 등과 같이 복리후생을 후하게 주는 것처럼 하고는 실질적인 모집수당을 낮추거나, 김정현 본부장이 경험했던 것처럼 수수료의 법인 지급률을 속이는 방식이다. 때문에 <FC가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때, 공동체 모두의 행복이 달성된다>는 FC제일주의 경영원칙을 기반으로 법인의 지급률을 투명하게 공개한 <프라임에셋>은 GA업계의 혁명일 수 밖에. 참고로 회사가 원수사로부터 지급받는 총 수수료는 영업가족 누구나 회사 인트라넷인 팜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회사가 영업현장의 고정경비를 따로 지급하지 않고 영업관리자에게 수수료로 지급하는 <프라임에셋>의 모든 영업관리자는 결국 또 하나의 작은 GA를 운영하는 셈이다. 그녀가 평생의 가장 큰 가치철학으로 삼았던 믿음이 깨진 상태에서 다시 시작한 <프라임에셋>은 그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안겨 준 셈이다. 바로 리더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리더가 해야 할 책임감 등 본격적인 그녀만의 사업이 시작된 것이니까.
그녀는 <프라임에셋>의 구성원들이 참으로 지혜롭다고 말한다. 공정하게 규정을 지키는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강력한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때문이란다.
“김진필 이사님께는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그분의 섬세한 관심과 원칙에 입각한 규정 적용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본부장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지요. 지금 저희 29본부의 영업가족이 170명 정도됩니다. 그런데 제가 리크루팅 한 사람은 15명이 채 안되거든요. 회사의 훌륭한 시스템이 이러한 결과를 낳아준 것 같습니다. 매출 또한 이전 법인에서는 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장기 700만원 정도를 했었는데, <프라임에셋>에서는 2,000만원 이상의 매출을 하고 있지요. 매일매일 사용인 시험을 보시는 분들의 명단과 위촉 현황을 보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릅니다. 그 분들도 모두 <프라임에셋>에 오셔서 성공하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더욱 열심히 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증원된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날 때 만큼은 매일 매일 가슴이 두근거리고 벅차 오른다는 그녀. ‘내가 아닌 우리가 소중하다’는 그녀를 바라보며 진정한 리더의 틀을 잡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최고의 지도자는 백성이 궁극적으로 지도자가 없어도 될 정도로 그들을 잘 돕는 자라는 노자의 말처럼 <프라임에셋>은 김정현 본부장 스스로 최고의 지도자가 되기를 바란다. 리더십 권위자인 마이클 맥코비는 가장 현명한 리더는 팔로워들이 스스로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리더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녀도 모르는 동안 스스로 그러한 리더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도 그녀를 일깨워주는 ‘상징물’이 있다. 흔들릴 때나 약해지려 할 때, 곁에 두고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상징물, 그것은 바로 그녀의 일기장이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면서 그날의 일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훗날 똑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메모하고 체크하는 것이다. 인터뷰 일정을 잡고 그녀는 오래 전 일기장을 다시 꺼내 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너무 서운한 마음에 ‘나쁜 놈’, ‘미운 놈’ 하며 흘겨 썼지만 뒤돌아보면 모두가 아쉬움으로 남는 사람들이다.
“영업을 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받는 일이 많아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사람들도 많답니다.”
믿는 사람들을 향한 아쉬운 마음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그녀는 더욱 열심히 일하게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훌륭한 계획을 세우고 굳은 결심을 한다. 하지만 게으름에, 개인적인 이익에, 두려움에 초심을 잃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상징물’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정현 본부장처럼 의미가 담긴 일기장이나 조언, 좌우명, 또는 책의 한 구절 등 우리 삶의 원동력이 될 무언가를 지금부터 찾아보면 어떨까.
2022년 현재
김정현 본부장은 214본부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