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2022년 7월 I 글_박주영 작가 I 사진_조성재 작가
‘사람다움’은 배귀현 본부장이 사용하는 블로그 닉네임이다. 사람답게 일하고 성공하여 자신만의 진짜 인생을 사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인생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말 ‘다움’의 어원에는 ‘행위’가 포함되어 있다. 즉 언행일치가 되어야 ‘~다움’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148본부의 배귀현 본부장이 보험인으로 살아온 길과 인생은 바로 ‘사람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사람다움을 실천하는 보험인, 배귀현 본부장을 대구에서 만났다.
오전 10시, 148본부에 도착하니 아침 미팅을 막 끝내고 나온 배귀현 본부장과 FC들이 반갑게 기자를 맞아주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호남형의 좋은 인상과 미소 짓는 눈에서 숨길 수 없는 활기가 가득 전해져 왔다. 인사를 나누고 들어선 배본부장의 사무실은 책상이 있는 자리 외에는 빽빽한 책장이 삼면에 가득 차 있었다. 리더십 및 경제 경영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보면서 그가 끊임없이 공부하는 리더임을 알 수 있었고, 배본부장의 성공의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위해 미팅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본부 곳곳에 걸린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리더를 양육하는 리더’, ‘2022년은 동반 성장의 해’, ‘크게 생각하라, 열정적으로 일하라, 과감하게 행동하라!’ 등 성공의 동기를 부여하고 성취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슬로건들이었다.
인터뷰 내내 배본부장은 자신의 삶을 담담히 풀어냈다. 성공한 일만 부각하는 것이 아니라, 과오와 실패를 통해 배운 것과 어떻게 극복하여 현재의 성공을 누리는지를 진솔하게 꺼내 놓았다. 배본부장의 목소리에는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고 성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신감과 에너지가 묻어났다.
프라임에셋에서는 9년 차이지만, 이전의 원수사 경력까지 22년 차 보험인의 인생과 일 이야기는 단순한 보험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배본부장과의 인터뷰는 물 흐르듯 거침없으면서도 유쾌하고 유익했다.
사람다움, 보험
삶으로 체득한 보험의 필요성
배귀현 본부장의 고향은 전라남도 여수에 속한 섬 금오도다. 아름다운 남해 바다에서 멸치잡이 선장을 하는 아버지 아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선장인 아버지 덕분에 풍족하고 여유로웠으며, 수학을 좋아했던 소년의 꿈은 막연했으나 은행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크나큰 변고가 생겼다.
한밤중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나 깨어보니 셋째 동생이다. 동생은 열이 펄펄 끓어 불덩이인 채로 끙끙 앓고 있었다.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놀라 건너온 부모님은 뜨거운 동생의 몸을 밤새 닦으며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배본부장도 뜬 눈으로 긴긴 밤을 세웠고 아침 급히 부모님과 함께 찾은 의원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더 청천벽력이었다.
“일본뇌염 증상인데 여기서는 치료가 안 됩니다. 지금 당장 큰 병원으로 가야 해요.”
한시가 급한 동생은 섬에서 전남병원으로 2시간이 넘게 배를 타고 이송되었다. 당시 뇌염은 치명률이 높았고 동생의 상태도 위중했지만, 부모님은 자식을 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이셨다. 하루 이틀에 끝나는 병이 아니었다. 돈도 너무나 많이 들어갔다. 긴 병원 생활을 마치고 동생은 집으로 돌아왔지만, 산송장 같은 상태였다. 열이 많이 나는 병이라 동생은 얼음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때를 회상하면서 배본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생전 처음 얼음을 그렇게 많이 봤어요. 마을이 남쪽 아래여서 눈 구경도 어려운 곳이었죠. 동생을 어떻게든 고치기 위해 부모님은 최선을 다하셨고, 다행히 동생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지만, 오른손과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부모님은 용하다고 소문난 침술가에게 침을 맞히기 위해 20리가 넘는 길을 동생을 업고 다니셨죠. 온몸에 침을 꽂은 동생이 영락없는 고슴도치 같았던 게 생각나네요.”
막대한 치료비에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영세민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나이였지만 학교에서 자신을 영세민으로 분류하는 것을 보고 집이 가난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군것질도 사치여서 고민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어떤 보호 장치도 없었고, 꽤 긴 시간 가난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든 시간이었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서 배본부장은 대구에 있는 섬유 공장에서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건설노동자, 가구배달원, 호프집 운영, 폐기물 처리업, 의류판매업 등 쉬지 않고 가족과 자신을 위해 일했다. 틈틈이 영어학원, 컴퓨터학원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힘들고 시련이 많았지만, ‘무엇이든 시작하면 반드시 끝까지 올라간다’는 적극적 사고가 그를 이끌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동생의 병환은 그가 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첫 번째 기억이었다.
두 번째 기억은, 1994년에 일어난 아버지의 사고다. 당시 배본부장은 여수에서 의류판매업에 종사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도 하며 가정형편이 점점 나아지고 있었다. 그날도 고객에게 예복을 추천하고 있는데, 매장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가 선박 사이에 끼는 큰 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이송 중이니 서둘러 오라는 전화였다. 너무나 놀라 병원으로 황급히 달려갔지만, 눈앞에 마주한 아버지는 온몸이 파열되어 심각한 상태였다. 개복하여 수술을 시도했지만, 몸속은 더 엉망으로 간경화도 진행된 상태였다. 배본부장은 충격으로 힘드신 어머니를 대신하여 수술에 입회하고, 또 아버지 사고에 대해 합의도 담당했다. 그러나 선주와의 사고 보상 합의는 당시 22살이었던 배본부장이 결정하고 감당하기엔 너무 큰 일이었다. 다행히 당시 건설회사에서 산재 관련 업무를 하던 큰집 형님이 도움을 주어 합의할 수 있었다. 합의는 했지만, 막대한 수술비와 병원비가 들어가는 상황이었고, 아버지는 보험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있었지만 해지’된 상태였다. 어머니가 몰래 들어놓은 보험을 알게 된 아버지는 크게 화를 냈고,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서 보험을 해지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사고가 일어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배본부장은 다시 벌면 되겠지 하고 마음을 추슬렀지만, 가장 없이 기울어진 생활은 오랜 시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이야기하는 배본부장의 얼굴에 회한이 어린다.
“아마 손해보험에서 보험 영업을 시작하고, 또 손해사정에 관심을 갖고 깊게 공부했던 이유도 다 아버지의 사고가 계기가 된 것 아닌가 싶어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게 참 당연하고 중요한데 그걸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보험이란 것을, 그 소중함을 제 삶으로 깨달은 거죠.”
그렇다. 보험은 정말 어려울 때 가장 필요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며 인생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배본부장이 삶으로 체득한 보험의 필요성이었다.
보험업에 뛰어들다!
동생의 질병으로 가세는 기울었고, 사고로 투병생활을 해오던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으며, 이른 나이에 결혼한 배본부장은 이미 책임져야 할 가족이 많은 가장이었다. 그리고 집안의 병환과 사고를 보험으로 대비하지 못한 결과를 온몸으로 체험한 사람이기도 했다. 일찍부터 공장노동자, 영업사원, 건설노동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돈도 벌었지만 힘들게 번 돈은 쉽게 사라졌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또 제대로 쓰고 싶었다.
그리고 왠지 보험을 하고 싶었다.
보험이 하고 싶었던 배본부장은 2000년 신문에서 삼성화재 대리점 모집 공고를 보고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대리점 자격 시험을 통과한 그는 삼성화재에서 대리점을 개설하고 그의 운명적 일이자 인생이 되는 보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선진국 대리점. 그가 개설한 대리점의 이름이다.
“처음에는 고객을 만들기 위해서 전단지 만장을 돌리고, 야간에도 자동차 사고 건이 있으면 현장에 쫓아가 처리했어요. 모임에서 총무 일도 도맡아 하고 봉사활동 단체에 가입해 열심히 봉사하며 한 명 한 명 고객 수를 늘려갔지요. 그러한 피땀 흘린 노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해 꽤 돈을 벌었어요. 억대 연봉! 하지만 보험 일이란 게 실수를 허락하지 않거든요. 수수료가 환수되기도 하고, 친구의 실수로 민원이 들어와서 회사에서 보험료를 반환해주고 내게 구상이 들어오기도 했었죠. 그러면서도 난 마냥 이 일이 좋았어요. 나에게 보험은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고, 그래서 이름도 선진국 대리점으로 한 겁니다. 보험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국 같은 보험을 하고 싶은 열망을 담은 이름이에요. 지금도 본부 가족들에게 보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문가임을 알리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험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죠.”
키맨이 되어준 첫 보험금 지급 고객
‘보험은 사람이 먼저’라고 말하는 배본부장! 첫 보험금 지급은 그런 배본부장이 더 많은 고객을 만나게 된 마중물 같은 사건이고, 잊지 못하는 첫사랑 같은 기억이다. 또한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회의가 들고 지칠 때 그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삼성화재에서 2000년도에 처음 출시한 어린이 보험에 가입한 고객의 아이가 아파트 상가 우동집에서 복도에 내놓은 뜨거운 국물에 크게 화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식수술도 하게 된 큰 사고였다. 다행히 충분한 치료를 받을 정도로 보험이 잘 설계되어 있었고, 배본부장은 보험금을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다. 덕분에 아이는 잘 회복되었다. 그 고객은 이후 키맨이 되어서 다른 많은고 객을 소개해 주었다. 이때가 배본부장이 보험을 시작하고 1년쯤 되었을 때였고, 그 후로 일이 잘 풀리며 회사에서 그의 노하우를 강의하게 되기도 했다. 그가 가장 보람으로 느꼈던 것은 가장 필요할 때 사람을 도왔다는 것이다. 그때를 회상하며 배본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이가 화상을 입고 수술해야 하니,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어요. 그러나 다행히 회복이 가능할 수준의 보험금이 지급되니까 아이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면서도, 보험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그 부모는 안도하고 감사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러나 늘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만은 아니었다. 보험은 회사와 고객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도 한다.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배본부장은 대부분 고객의 편을 들어주었다. 한 예로 보험에 가입한 친구가 신장 이식수술을 하게 되었다. 친구의 어려운 상황에 배본부장은 보험금이 치료비 외에도 2000만 원이 더 지급될 거라고 위로했다. 서로 안심하고 있었는데 보험금을 청구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친구가 고지의무를 누락했기 때문이다. 배본부장은 친구를 위해 이를 본인 과실로 인정하고 친구에게 납입보험료를 모두 돌려주었다. 계약이 취소되었기에 본인이 받은 수수료가 추가로 환수되는 어려움은 덤이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면 예민해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수술 후 건강을 되찾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면 그때 자신보다 더 힘들었을 친구를 돕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친구는 다른 고객을 소개해 주는 반전의 키맨이 되었다.
배본부장이 그렇게 삼성화재에서 일한 시간은 성공가도를 달린 시간이었지만 과도기 같은 성장이었다. 억대 연봉을 받게 되었지만 많은 돈을 버는 것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을 지기도 했다. 한번은 회사에서 보험금 과다지급 사유로 6개월간 영업정지를 받기도 했다. 당시에 중복보험은 특별한 규제 없는 현장 영업전략 중 하나였는데 너무 많은 보험금이 지급되자 회사에서는 6개월 영업정지라는 페널티를 준 것이다. 그럼에도 배본부장은 절망하지 않고 다시 회복할 방법을 강구했다. 그리고 보험은 더욱더 자신의 천직이라는 생각이 굳건해졌다.
절망 끝에서 프라임에셋을 만나다
그러나 보험영업에서의 분명한 한계도 보였다. 아무리 열심히 영업하고 리쿠르팅을 해도 결국 영업만 하는 설계사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보험 업계의 구조는 그에게 더 이상의 성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돌려받지 못하자 회의감이 들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이혼과 재혼이라는 큰일을 겪고 아이들의 사춘기로 인한 갈등 등,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큰일들을 겪으면서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 났다. 잘 살고 싶었다. 자유롭게 일하며 잘 살고 싶었는데, 그렇게 좋아하고 천직으로 여겼던 보험을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면 죽어버려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문득 2년 전 GA로 옮겨간 동료가 소개해 준 프라임에셋의 최승욱 본부장이 생각났다. 최본부장은 당시 삼성화재 설계사였던 배귀현 본부장을 만나서 ‘평생 설계사만 할 것이냐?’라고 물었고, 배본부장은 당시 ‘현재에 만족한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현실이 힘들어지니 생각이 바뀌었다. 그리고 과연 프라임에셋은 얼마나 다를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다시 최승욱 본부장을 찾아 광주라는 낯선 곳을 향했고, 그날의 미팅은 배본부장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프라임에셋의 시스템은 낯설 정도로 달랐다. 막연히 GA라서 다를 거라고 짐작했던 것들 이상으로 많은 부분이 달랐다. 이미 보험으로 성공해봤고, 주류에 속해 있다고 자신했기에 GA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니 본인이 새로운 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다. 회사 규정과 시스템을 들으며 프라임에셋은 다른 GA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배본부장은 결단을 내린다. 바로 삼성화재를 떠나 프라임에셋으로 옮기기로!
보험다움, 프라임에셋
프라임에셋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
자유로움 – 프라임에셋의 CEO는 규정집
2013년 6월, 배본부장은 설계사이자 관리자로 프라임에셋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6월달 코드를 받기 위해 남아있는 잔여 수수료와 비비례 수수료 800만 원도 포기하고 5월 30일에 삼성화재에서 해촉을 했다. 하루 차이로 비비례 수수료를 포기하는 것은 분명 아까운 일이었지만, 배본부장에게는 이 선택이 더 현명하다는 분명한 확신이 있었다.
“수수료만 생각하면 아깝지요. 그렇지만 포기하고 얻는 기회비용이 훨씬 더 크고 가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프라임에셋의 투명한 수수료 체계와 높은 테이블을 생각하면 몇 개월 안에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2013년 6월 프라임에셋에 입사하고, 60평 사무실에서 설계사인 자신과 여직원 3명, 실장 1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빨리 장밋빛 미래가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마음처럼 조직이 늘지 않아 첫해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배본부장은 프라임에셋이라는 회사가 가진 특별함과 가능성을 분명히 보았고, 프라임에셋이 가장 보험다운 보험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꾸준히 함께 할 사람을 미팅하고 스카우트도 하고, 이리저리 여수와 순천도 다니면서 소개도 요청하며 최선을 다한 결과, 그는 2년 만에 본부장 자리에 오른다. 이것은 짜릿한 쾌감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배본부장이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설계사는 돈으로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계사를 돈으로 모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다양한 형태의 리스크가 발생했다. 결국 답은 시스템과 그에 따른 솔루션이었다. 프라임에셋은 열심히 영업해서 수수료만 증가하는 단기적 결과로서의 성공이 아닌, 관리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의 비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회사의 시스템 안에서 솔루션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본부장이 되는 쾌거를 이뤘다.
프라임에셋에 와서 본부장이 되기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며 배본부장은 프라임에셋을 선택한 분명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큰 이유는 자유로움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일이 굴레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좋아하는 일을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고, 또 시간적 여유를 누리고 싶었죠. 그런 면에서 보험은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적합한 일이고, 프라임에셋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훌륭한 회사입니다. 입사와 퇴사, 수수료의 지급과 환수, 그리고 모든 구성원의 직급별 권한과 책임이 정의되어 있는 규정집을 기준으로 본부를 운영하면 되고, 매출을 강요하지 않지만 수수료 체계는 높아서 높은 이익을 창출하죠. 또 지점을 운영하는 데에 있어 관리자에게 많은 권한을 주기 때문에 경영을 하는 느낌으로 조직을 운영하게 되고 시간적 여유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프라임에셋을 만나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죠. 지금은 자유를 찾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또 경제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덕분에 사람과 사랑을 잃지 않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영업관리자로서의 비전과 성장 가도 – 환수연대책임이 없는 프라임에셋 시스템
앞서 말했듯이 배본부장이 프라임에셋에 정착한 가장 큰 이유는 ‘자유’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임팩트가 있었던 건 바로 ‘리스크로부터의 자유’다. 리크루팅을 열심히 하다 보면 관리자가 되고 수입도 증가한다. 그러나 증가한 수입 이상으로 리스크도 증가한다. 산하 FC들의 계약이 해지되어 보험사 환수가 발생하면 결국 관리자에게 연대책임이 뒤따르고, 심지어는 먹튀 조직의 환수를 전부 책임지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배본부장 또한 지난 회사에서 이런 일들을 여러 번 겪었다. 그럴 때마다 경제적 손실도 손실이지만, 보험업에 대한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아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늘 갈등해야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프라임에셋은 영업관리자의 환수연대책임을 폐지하고 본사에서 직접 리스크를 관리하고 있었다. 관리자 각자가 감당해야 했던 위험계약 선별과 채권추심 등을 본사에서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있기에 프라임에셋에서 영업관리자가 리스크 없이 리크루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자유는 당연한 것이었다. 누구나 관리자의 꿈을 꿀 수 있도록 회사가 시스템으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배본부장은 자신 있게 말한다.
“리스크로부터의 자유! 이것 때문에 여기 왔습니다!”
관리·경영자로 성장할 수 있는 공정한 기준
‘진짜 조직을 만들 것이다. 이것은 내 사업이다!’
배본부장이 프라임에셋 지점을 내면서 가진 목표다. 삼성화재에 있을 때 배본부장을 고민하게 한 것은 ‘언제까지 설계사로만 살 것인가’라는 한계에 대한 의문이었다. 경제적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꿈, 인생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기에 머물면 안 되었다. 이런 답답함에 찾아 나선 첫 GA에서 답을 얻게 될 줄이야! 배본부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건, 프라임에셋이 관리자가 되는 것을 권장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냥 권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기준을 규정으로 공시하고 있었다. 기준을 달성하여 지사장·본부장이 되면 자율권을 가지고 지사·본부를 운영할 수 있었다. 권한이 큰 만큼 부담도 되지만 운영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행복하다. 이 부분이 배본부장의 마음을 확 이끌었고, 프라임에셋에서 영업을 넘어 경영을 배워가기로 결심한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가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이전 회사에서 받을 돈을 포기하고 새 사무실을 열다 보니 자본이 부족했고, 초기에는 버는 돈보다 나가는 게 더 많아 급여 날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조만간 본부장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 과정을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런 비전을 갖고 경영자의 관점으로 지점 운영을 바라보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많은 부분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프라임에셋은 그를 관리자이자 경영자로 도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배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프라임에셋에 와서 제가 고민한 보험다움을 펼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돈에 대한 개념, 경제에 대한 개념을 잡게 되었고, 배우고 성장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네요.”
148본부의 고공 성장 원동력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
배본부장은 지난 9년 동안 148본부의 직할지사 외에도 지사 3개와 자본부 1개로 조직을 확장시켰다. 놀라운 성과다. 이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148본부가 고공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함께 성장하는 조직’이라는 원칙이 있다. 성공한 조직에는 훌륭한 리더가 있지만, 결코 리더 혼자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배본부장은 팀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일에 전력투구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FC들이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배본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상품공부와 리딩스터디이다. 이 과정을 통해 팀원들에게 계속 동기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성공한 자신의 자아상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상품 공부 – 고객에게 맞는 영업
배본부장은 FC들이 스스로 설계하고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소개하려면 무엇보다 상품공부가 중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상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다. 보험인생이 만으로 22년이다. 고객이 가진 실손보험이나 정액담보 서류 한 장만 봐도 어떻게 보험을 세팅하고 컨설팅해야 할지 보인다.
지금은 보험 설계를 하지 않고 조직 관리만 해도 되지만, 오랜 고객들은 보험을 갱신할 때가 되면 운전자보험 하나도 그를 찾는다. 그래서 상품공부를 중요시하며, 아침 7시 기업컨설팅 미팅, 8시 리딩스터디 외에도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2시간 동안 기초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간은 상품에 대한 지식 외에도 배본부장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노하우를 전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상해와 질병의 명확한 차이와 그에 따라 담보가 어떻게 적용되는지, 손해보험과 생명보험의 차이점 및 역할과 담보, 배상 책임, 특약 등을 공부하고 실제 사례에 맞춰 설계하는 것을 배운다.
더불어 배본부장이 강조하는 것은 고객의 직업과 연관된 컨설팅이다. 즉 고객이 어떤 일을 하느냐가 보험을 설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컨설팅을 받은 고객들의 신뢰를 받으며 많은 계약으로 이어졌다. GA이기에 다양한 상품을 계약할 수 있는 데다가 프라임에셋은 보장 분석에 대한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고객의 니즈와 맞물려 설계하면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고객들에게 148본부는 보험 맛집으로 소문나 있다. 보험과 보험사가 많은 시대이지만, 끊임없이 상품을 공부하고 고객을 먼저 생각하면 차별화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리딩스터디 – 책 속에 있는 해답과 그 변화
배본부장이 프라임에셋에 오는 계기가 되었던 母본부의 리딩스터디. 처음 참여해 본 리딩스터디에서, 그는 책 속에 삶의 지혜와 해답이 들어있음을 확실하게 느꼈다. 배본부장은 그날 바로 추천 리스트의 책을 모두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으며 삶의 목표와 방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148본부 아침 미팅에서도 리딩스터디를 진행했다. 그 결과 팀원들도 콘텐츠가 자신 안에 쌓여 있으면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응용될 수 있으며, 일에 있어서 놀라운 시너지를 가져옴을 경험하게 되었다.
리딩스터디를 통해 반성하거나 도전받은 것을 공유하고, 변하려고 노력하며, 어떻게 변할 것인지 계획표를 짠다. 이러한 노력은 영업실적으로 이어졌다. 배본부장은 이렇게 비유했다.
“조직의 성장은 돈이 아니라 생각이 바뀌는 데 있습니다. 리딩스터디는 가장 적합한 교두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전략적 영업
2020년은 본격적으로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해이다.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세상을 살게 되었고, 신천지 파동으로 단기간에 많은 확진자를 낸 대구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다. 생활의 많은 영역이 비대면 체제로 전환되면서 대면영업 비중이 큰 보험 업계는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준비된 자를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대구는 처참한 상황이었으나, 외부 지사의 매출증대가 대구지역의 매출감소와 상쇄되어 본부 실적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배본부장은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지역 제한 없이 7년간 적극적으로 지사를 설립하고 키워낸 결과였다. 덕분에 지금 당장 큰 손해는 없었지만, 장기화되는 코로나19 상황을 대비할 타개책이 추가로 필요했다.
배본부장은 기업 영업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찾아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오는 병원 인하우스 및 온라인 영업을 적극적으로 두드렸다. 특히 기업 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노무사, 법무사, 세무사, 손해사정사들과 협업을 통해서 사건이 발생하면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고객 확보를 하게 되는 상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고객 편의를 위해 고객관리 시스템을 리뉴얼하였고, 자동 문자 발송서비스 등을 통해 관리를 받으니 고객들은 이탈할 일이 없을뿐더러 갱신과 신규가 더 유입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공다움, 롤모델이 되는 리더십
보험의 근본은 사랑, 사람
한 분야에서 10년간 일하면 전문가라고 한다. 22년간 보험 외길을 걸어온 배본부장은 전문가 중 전문가일 것이다. 성공한 리더의 위치에서 배본부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연코 보험에 대한 근본이다. “보험은 사랑이다.”라고 단언하는 그에게 보험은 여러 의미에서 사랑이다. 보험이 갖는 가치와 장점이 여럿 있지만, 그중 첫째는 보험이 ‘사람을 위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 가족들에게 보험이 있었다면 그의 동생과 아버지는 좀 더 나은 치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삶도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갑작스러운 아이의 화상으로 힘들고 낙심한 부모가 보험금을 지급받고 희망의 빛을 만나 기뻐하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일은 보험을 대하는 마음이 퇴색될 때마다 떠올리는 첫사랑 같은 기억이다. 보험과 고객을 대할 때, 보험이 사람을 위한 일이란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다.
리쿠르팅을 할 때도 수수료나 선지급 같은 실리 위주의 리쿠르팅이 쉽고 확실해 보이지만, 자신의 이익만 중시하는 관계는 결국 깨지고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결국 리쿠르팅을 하든 영업을 하든 그 기본은 사람이고 사랑이다. 배본부장은 모든 교육에 앞서 이 기본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을 기본으로 한 성공이 진정 ‘성공다운 보험’이다.
나는 나를 복제한다: 같이 성장하는 리쿠르팅
“나는 나를 복제하고 싶어요.”
언뜻 들으면 성공한 사람의 자만심에서 나온 말이라 느낄 수 있지만, 사실은 팀원들 모두가 성공한 보험인의 길을 가길 바라는 배본부장의 진심이 깃든 말이다. 나 혼자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료가 같이 성장하고 리더로 성장하는 것이 배본부장의 목표다 .그래서 리쿠르팅을 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수수료나 돈 이야기보다도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도구가 무엇인지 먼저 알려준다. 그래서 성장 전략을 물어보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마음속에 오아시스가 솟아나듯이 시원한 기분이 든다. 그런 사람은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자유를 가진 동료로서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은 또 리더가 된다.
배본부장은 리더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다음 차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그들이 발전하면서 나 또한 발전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 말한다.
내가 아니어도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세우는 것, 단순한 추종자가 아닌 지경을 넓혀가는 리더를 양성하는 것이 바로 프라임에셋의 밸류체인이며 148본부의 성공 비결이다.
배본부장은 먼저 성공의 롤모델이 되고, 세심한 관찰력으로 빌더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같이 뛰는 러닝메이트가 된다. 그렇게 오재성 본부장이 이끄는 자본부 241본부가 세워졌다. 241본부는 프라임에셋 창사 이래 순천 지역 첫 본부가 되었다. 탁월한 리더십을 보이고 영업가족들의 고충을 잘 다독여 가면서 순천에서 굳게 자리 잡은 오재성 본부장은 이제는 더없이 든든한 동반자다. 또한 경산 공지영 지사장, 대구 황동준 지사장, 전남 순천 서영주 지사장을 비롯하여 상주, 영천, 여수, 대구에 많은 리더들이 복제되었다. 모두 자신의 지사 식구들을 위해 다양한 영업패턴을 찾아주며 함께 성장하고 성공신화를 써 가고 있는 멋진 사람들이다.
미래를 전망하고 제시하는 리더
배본부장이 끊임없는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전망하기 위해서다. 성공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22년의 보험 인생을 통해서 그가 뼈저리게 깨달은 진리이기도 하다. 성공을 원한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배본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흔히 책에 길이 있다고 말하는데, 정말입니다. 제가 롤모델로 삼고 영감을 많이 받은 작가인 브라이언 트레이시는 <<백만불짜리 습관>>에서 ‘습관은 바꿀 순 있지만 없앨 순 없다’고 했는데, 그 말에 영향을 받아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었고 매일 아침 책을 읽습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팀원들과 스터디를 하고 또 사회와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고 전망하며 시장의 흐름을 계속 이야기한다.
실례로 배본부장은 몇 년 전부터 변액보험 시장이 제대로 성장할 것을 전망하고 제시했고, 그 덕분에 148본부는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었다. 2017년에 포항에 큰 지진이 있었다. 배본부장은 지진이 나기 1~2년 전부터 지진 보험을 넣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사회와 환경 자체가 변해가는 것이 보험 시장에 반영되어야 함을 캐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게릭병 같은 난치병에 대한 진단비 보험이나, 운전자보험이 바뀌는 부분도 미리 전망하여 구체적인 대안들을 준비했기 때문에 그 흐름에 맞춰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인생다움, 나의 사람 나의 꿈
나의 든든한 동반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다. 숲에서 갈림길을 만난 화자가 망설임 끝에 한 길을 선택했을 때 남겨진 길에 대한 아쉬움과 그럼에도 선택한 길을 꿋꿋이 가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담은 시다. 배본부장도 무수히 많은 갈림길에 서 왔다. 그때마다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린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양이 체셔 캣에게 묻는 앨리스. 그런 앨리스에게 고양이는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묻지만, 앨리스는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한다. 이에 고양이는 아무 곳이나 가라고 말한다. 배본부장은 이 대목에서 목표가 없는 삶은 위험한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 앞에 섰을 때 항상 기준으로 삼는 것은 ‘인생다움’이라는 목표이다. 나다운 인생을 사는 것, 남에게 피해 주지 않으며 보험으로 성공하겠다는 목표는 일하는 방법 자체를 바꿔주었다. 그리고 그런 배본부장의 옆에는 때로는 투쟁적으로 때로는 묵묵하게 때론 쉴 곳이 되어 같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배우자이자 사업파트너인 김상숙 실장이다.
2008년에 만난 두 사람은 각자 이혼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지만, 그렇기에 서로를 이해하며 인생의 방향을 함께 고민할 수 있었다. 김상숙 실장이 삼성화재 영업소에서 총무로 근무하며 쌓인 실무경험은 동반자로서 큰 힘이 되었다. 그뿐 아니라 손해보험, 생명보험, 변액보험 등의 자격증을 따고 지금까지 148본부를 함께 운영해오고 있다.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잘 알고 이해해주며 조언과 뼈 있는 말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다. 배본부장이 김상숙 실장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빙그레 띤다.
“김실장과 저는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고, 또 함께 지켜야 할 자녀들이 있기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반자이지요. 그래서 저는 운이 참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인생에 아름다운 내 사람이 있어서요.”
경제적 자유인: 나누고 꿈을 이룬다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쓸려면 우선 벌어야 한다. 배본부장에게는 구체적 목표가 있다. 현금 천억을 가져보는 것이다. 입이 딱 벌어지는 금액이지만, 이를 말하는 배본부장의 목소리에는 어느 정도 부를 이룬 사람의 확신과 자신감이 있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요사키가 ‘돈의 배반’이라는 인터뷰를 했어요. 질문자가 ‘당신은 왜 그렇게 돈을 빨리 많이 벌려고 하느냐?’고 질문했는데, 기요사키의 대답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나는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과 오랫동안 사랑하고 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기에 빨리 부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과 얼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라고 했지요. 돈은 서서히 벌면 된다고 했던 생각이 확 깨져버렸어요. 내가 추구하는 인생다운 인생을 살려면 빨리 부자가 되어야겠구나 싶었지요.”
그 결심 이후 배본부장은 프라임에셋에서 계속 지평을 넓혀갔다. 소개, 협업을 통한 간접투자에도 힘쓰고 수입원이 되는 여러 채널을 구축했다. 그리고 팀원들에게도 도전하도록 북돋는다. 종잣돈을 모으고 분산 투자를 하고 손해에 연연하지 않을 정도에서 적극적인 투자도 해보게 한다. 또 무엇보다 구체적으로 돈을 번 후 어떻게 쓸 것인지 상상하고 그려보게 한다.
“일억 원을 벌었을 때 어떻게 쓸 것인지 상상해보라고 말해요. 그게 안 되면 돈을 벌어도 패가망신한다고요. 사실 그건 제 이야기예요. 프라임에셋에 오기 전에도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경제에 대한 개념이 잡힌 건 프라임에셋에 온 이후부터예요. 내 조직을 꾸리고 진짜 경영을 하면서, 또 책을 읽고 여러 분산 투자들을 해보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돈을 벌고 쓰고 투자해야 하는지를 배웠지요. 저에게 돈은 더 이상 손에서 쉬이 흘러내리는 모래알 같지 않아요.”
그렇게 부를 이룩해서 배본부장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제일 우선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는 것이다. 현재는 함께 살지 못하는 자녀들이 언젠가 맘 편히 찾아올 수 있는부 모가 되고, 함께 할 공간을 내주고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꿈. 이 꿈은 1년 전부터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고생 많이 하신 어머니와 동생들도 이제는 대구에서 잘 살고 있지만, 그걸 계속 지켜주는 몫은 자신의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나와 가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나누는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로터리클럽 일원으로 사회봉사에 힘썼고, 앞으로도 다방면으로 나누는 삶을 일구어 가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꿈을 말하면서 배귀현 본부장의 눈이 더욱 반짝였다. 즐거움과 기대가 가득한 눈빛이다.
“퇴직 후 내 고향 금오도에 갈 겁니다. 내 놀이터로 놀러 갑니다. 프라임에셋에서 보험다운 보험을 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면서 자유와 경제적 여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금오도에 레저 스포츠 센터와 리조트를 만드는 꿈을 갖게 되었고 그 꿈을 이룰 겁니다. 거기서도 자본부와 지사처럼 여러 사업과 그것을 맡아 줄 리더들을 만들 겁니다. 저의 가족과 친구들과 신나게 놀 거고, 나의 고객도 나의 본부.지사 식구들도 신나게 걱정 없이 놀 겁니다. 제 꿈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나요? 하하”
끝을 알 수 없는 수평선과 파도를 품은 푸르디 푸른 남해 바다, 이 바다를 품은 멋진 리조트, 신난 휴양객들과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앞에 그림같이 펼쳐지는 것 같다.